강민은 전 KT 롤스터 소속의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전 MBC GAME, 현 OGN 소속의 해설자이다. 박정석, 박용욱과 함께 구 3대 프로토스의 일원이며, 과거부터 존재하던 더블 넥서스 빌드를 개량하여 김택용의 비수류로 이어지는 수비형 프로토스의 기틀을 잡은 초창기 대표적 프로토스 플레이어 중 한 명이다. 현재까지 사용되는 프로토스의 기본 개념을 재정립 했으며, 심시티를 제대로 연구해서 사용하기 시작한 심시티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2002년 CJ 엔투스팀에 입단하여 3년간 3억 6천만원이라는 파격적 조건으로 KT 롤스터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이적 이후엔 프로리그 에이스 결정전 9연승 등의 활약으로 KT 롤스터의 04~05 시즌 23연승에 일조하며 양대 게임 방송사를 오갔지만, 양대 개인 리그에서 모두 활약한 시기는 2003년 가을쯤 뿐이고, 이후 NHN 한게임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03~04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질레트 스타리그 2004 16강에서 탈락한 후로는 2006 신한 은행 스타리그 시즌 1에서 24강을 통과해 16강에 한 번 오른 것이 전부이다. 그리고 그 시기 동안 MSL에서 활약했다. 정리하자면 이 시기에 온게임넷에서는 박정석이, MBC게임에서는 강민이 대표적인 프로토스로서 활약했다고 볼 수 있다. 온게임넷 스타리그와 MBC GAME MSL 양대 개인 리그에서 모두 1회씩 우승하고 티빙 스타리그가 마지막 스타리그가 되어 유일 무이한 기록이 되었다.
이후 제대로 된 성적을 내면서 얻어낸 별명은 통칭 '광민'이다. 최고의 전성기는 그가 우승을 했던 스타우트'배 MSL부터 최연성의 등장 전까지 정도라 할 수 있다. 몽상가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그는 그의 별명인 '광민'처럼 뭔가 이상하다. 그 당시 상상도 못할 전술들을 마구 구사했다. 낭만적인 표현까지 곁들여 말하면, '프로토스 최종 오의, 환상 리콜' 스프리스 MSL 패자 준결승 이병민과의 경기 당시, 우주 방어 태세를 갖춘 이병민의 본진을 돌파해낸 '할루시네이션 아비터', 일명 '아비터 환영 분신술 전법'이 있다. 이 경기는 MSL 100대 명경기 1위를 차지했다. 이 장면을 돋보이게 한 것은 MBC 중창단의 샤우팅과 이병민의 적절한 GG 타이밍이다. 기묘한 전략을 통해 승리한 경기가 많기 때문에 전략가적인 면모가 부각되었다.
프링글스배 이전까지 박용욱에게는 너무도 약했다. 특히 다전제에서 세 번을 연달아 패했다.프링글스 MSL 시즌 1에서 3:0으로 승리한 이후로는 어느 정도 격차가 줄어들긴 했지만 그 이후로 둘 다 은퇴 기로에 서버려서 천적 관계 해소라고 하기엔 좀 무리가 있다. 이 3:0 이후에 WEF 2006에서 또다시 2:1로 패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고도 총 전적이 16:16이라는 게 놀라울 정도이다. 이렇게 중요한 자리에서 강민을 가지고 놀았던 박용욱은 강민에게 약했던 박정석에게는 프링글스 MSL 시즌1 이전까지 한 끼 식사였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프링글스배 MSL 리그에서 박용욱은 박정석을 상대로 다크 아콘을 활용해서 온게임넷 김캐리의 영원한 사랑인 캐리어를 모조리 빼앗아버리면서 설욕했다. 프링글스배는 3대 토스 천적 관계 역전의 리그. 가끔 4대 토스로 꼽히던 전태규는 토막이라 이런 곳에서는 빠지다시피했고, '한게임' 결승에서 강민에게 우승자 자리를 내준 것도 전태규였다. 활동 시기에는 원게이트 등 그 당시 잘 쓰이지 않는 빌드를 구사해서 나중에는 다른 게이머들처럼 자신만의 최적화 빌드와 정석을 주로 쓰고 깜짝 전략은 필살기 정도로만 남겨두었다.
더블 넥서스 빌드는 강민이 데뷔하기 한참 전부터 존재했던 전략이었으나, 강민 시대에는 이미 사장된 전략이었다. 당시 프로토스의 선택지는 '1게이트웨이냐, 2게이트웨이냐'로 갈렸었다. 이는 프로토스들의 인재풀이 부족해서 다양한 전략들의 시도가 적었기 때문이다. 더블 넥서스를 가고도 질럿, 하이 템플러, 아칸 조합 물량을 찍어내기 이전까지의 시간을 그저 '한 방 모으기 위해 참는 시간'으로만 인식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맵이 토스가 2가스를 먹기 너무나도 힘들었다는 게 더 컸다. 노스텔지아처럼 아예 앞마당에 가스가 없기도 하고, 있어도 개마고원이나 레퀴엠처럼 앞마당이 저그의 공격에 훤히 노출된 상태인 것도 많았다. 더블넥이 히트를 치기 시작한 것은 포르테, 알 포인트, 아카디아 등 토스가 2가스를 먹고 방어하기가 쉬운 맵들이 한 리그에 2개 이상 등장한 이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민 이전에 더블 넥서스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절대 묻혀서는 안 되는 것이, 이 사실이 강민이 더블 넥을 '창조'했다고 하는 무개념들의 입을 막는 결정적인 근거이기 때문이다. 강민이 더블 넥을 쓸만하게 만들었다고 그 전 시대의 더블 넥을 무시한다는 건 그 전 세대의 모든 유저들을 모욕하는 일이다.
강민이 더블넥서스를 재창조하는 데에서 짚어야 할 핵심은 원게이트 테크 트리의 접목으로 더블 넥서스에서 커세어와 리버를 교두보로 활용한 데 있다. 이를 활용하면서 프로토스는 저그의 추가 멀티를 효율적으로 견제하는 것이 가능해졌으며, '비싸서 후반 가서나 제대로 쓸 수 있다'고 여겨졌던 고 테크 유닛들을 당겨오면서 탈 게이트웨이 전략이 가능해졌다. 초반의 취약점은 게이트, 포지, 포톤캐논의 심시티를 이용해 틀어막았고, 여기에 잘 맞는 기요틴이라는 맵은 '강민틴'으로까지 불렸다. 강민은 기요틴에서 단 한 번의 패배만을 기록했다. 지상 맵으로까지 확산된 커세어 리버는 이전의 지긋지긋한 연탄 밭을 타파할 중요한 출구를 마련해 주었으나, 그 당시의 수많은 프로토스 중에서 커세어 리버를 제대로 구사한 것은 강민과 송병구 정도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때는 심시티가 단순히 초보적이었던 것 이상으로 맵이 심 시티를 받쳐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초반 압박에 대한 대처가 약해서 현재만큼 보급되지는 못했다. 오죽하면 엄재경은 강민에게 이걸로 저그의 9드론 빌드를 막을 수 있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강민은 OK라고 했지만, 초반 시간대를 막았더라도 프로토스가 취약한 시간대는 여전히 강민식 더블 넥서스 빌드의 발목을 잡았다. 수비 라인 완성 후 자원이 쌓이기 전 짧은 공백을 정확히 찌른 투신 박성준, '멀티 하나를 없애면 두개를 먹으면 되지'라는 마인드로 역으로 프로토스를 말라죽게 한 은가이 삼성 박성준 등의 대처법이 나왔고, 드랍쉽 공격에도 생각보다 취약했다. 프로토스가 입구를 틀어막고 리버 등의 후반부 테크 유닛을 활용하기 이전까지의 시간에 있는 힘의 공백은 2012년 스타크래프트1의 방송 경기 종료까지도 완벽한 대처법이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강민이 기본 틀을 정립하는데서 시작된 저그전 더블 넥서스 빌드는 훗날 김택용과 윤용태에 의해 비수류 공굴리기로 발전한다.
결론적으로 강민의 더블 넥서스 운용 정석화는 프로토스를 크게 발전시켰는데 이는 스타 리그 자체의 수명을 늘렸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강민이 시도한 더블 넥서스의 운영이 정석화되고 후배들이 계승, 발전을 이루자 자극을 받은 저그들도 네오 사우론 저그과 앞마당 심시티의 발전 등을 통하여 대응하며 리그에서 이제까지와의 저프전 양상과는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경기들이 나오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밑에도 있는 강민 MSL예고 동영상에서 볼 수 있듯 더블넥서스 운영의 정석화는 대단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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