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호는 현역 시절 유일하게 케스파 전체 통산 승률 70% 이상을 기록한 선수이다.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프로게이머 중에서도 어린 편이었다. 임요환과는 띠동갑이다. 고령 선수가 많아 ‘KT 노인 정스’라고 비꼬임 받는 팀에서 어린 나이 하나로도 주목받는 존재였다. 웃긴 사실은 이영호보다 한 살 많은 황병영하고 비교하면 이영호가 어리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는 점이다.
전태양처럼 나이는 어리지만 스타를 오래 한 게 아니라 중학교에 들어간 2005년부터 게임을 시작했고, 한동욱 선수가 우승하던 해(2006년) 초반에 스타크래프트 방송을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일 년 뒤 2007년 데뷔해서 김택용을 잡고 Daum 스타리그 2007 4강에 진출한다. 팬택에 입단한 것이 2006년이라고는 하지만 기요틴이 무슨 맵 인지 모를 정도로 늦게 시작했다고 한다.
'초등학생 때는 학생회장도 맡을 정도로 공부 벌레였다'고 잘못 알려져 있었으나, 이에 대해서는 이영호 본인이 개인 방송에서 아버지가 과장한 거라고 언급해서 사실이 아닌 걸로 밝혀졌다. 중학교에 들어간 때 쯤 형이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것을 보고, 그 후로 스타에 빠져서 부모님께서 컴퓨터를 여러 대 없앨 정도로 열심히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프로게이머가 되겠다고 뜻을 내비쳤고, 부모님은 당연하게도 말리셨는데 이영호는 한 달 만에 준 프로게이머 자격증을 따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 정말 말 그대로 한 달 만에 자격증을 따내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냈다. 다만 부모님의 요청으로 학교를 다니면서 프로게이머 생활을 병행하게 된다.
사실 데뷔하기 전부터 유명한 연습생으로 알려졌고 본래 ‘Siz 클랜’ 소속이었다. 그 당시 대표적인 별명이 바이오닉 천재였다. 이영호는 대표적으로 데뷔 하자마자 주목을 엄청 받은 신인이었지만 그 전부터 이미 유명세를 펼쳤었다. 이영호의 아이디 Flash의 유래와 그가 데뷔하기 전의 줄거리와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고하라. 참고로 이 줄거리의 팩트 여부는 아프리카TV에 오기 전까지는 이영호 본인 스스로를 통해 확실히 증명된 바 없었으나, 이영호가 아프리카TV에 넘어오고 여러가지 썰을 풀면서 본인의 아이디 FlaSh 유래가 첫 길드 Flash의 의리를 생각하여 썼다고 증명하였으며 그 후의 이야기들도 이미 유명한 이야기들이라 거의 정확한 팩트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리고 Siz클랜에서 오프라인으로 숙소에서 클랜원들을 게이머로 육성했을때도 숙소생활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 같이 있던 외국인인 크리스토퍼 날라예프도 같이 있었는데 그가 게임에서 지면 화를 버럭 지르면서 나간다고 했다고 한다. 당시 어린 나이의 이영호가 봤을 땐 크리스토퍼의 인상은 무서웠다고 했다.
개인 리그에서 데뷔하자마자 듀얼 토너먼트에서 박성훈과 윤용태, 그리고 마재윤을 잡은 김택용을 잡고 연달아 이윤열, 최연성 등 본좌 소리를 들었던 선수들을 이기고 프로리그에선 임요환,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선 마재윤와의 대결에서 아쉽게 지는 등 역대 본좌들과 데뷔 초부터 격돌했다. 8강에서 김택용을 초반 러쉬로 2:0으로 제압하고 15살의 나이에 역대 최연소로 Daum 스타리그 2007 4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Daum 온게임넷 스타리그 2007 3, 4위전 엔딩에서는 학교 생활을 하는 이영호의 모습을 촬영했었다. 그리고 학업과 본업에 충분이 충실한 모습을 보여 정말 학업과 본업에서도 최종 병기인 면을 드러내기도 했다. 반대하던 부모님은 지금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다고 한다.
이후 2009년을 기준으로 박정석, 홍진호의 입대와 다른 선수들의 은퇴와 이적으로 팀내의 중진으로 올라서 KT의 간판 에이스로 활약하였으며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승리를 쟁취했다. 특징으로는 항상 연승을 이어나가다가 어쩌다 패하게 되면 멘탈이 흔들릴 법도 한데 이영호는 자신의 패배 요인에 대해 엄청나게 분석하고 대안을 연마하여 추후 경기에 지난 번 패배 경기와 비슷한 양상이 발생했을시 비약적으로 탄탄해지고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며 상대를 찍어 누르곤 하였다.
같은 팀의 김대엽과는 고교 동창생이다. 2011년에 함께 고등학교 졸업을 했다. 더욱 더 연습에 매진할 수 있는 신분이 되었다는 말이다. 은퇴 이후 개인 방송을 진행하면서 조금씩 본인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어갔는데 말하기를 팀 내 에이스가 된 이후 단 한 번도 팀 내 랭킹에서 1위를 내준 적이 없다 하며 승률이 항상 90%이상 이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자신이 프로게이머 자격증을 따고 데뷔를 하면서 곧 바로 온게임넷 스타 리그 예선전을 뚫고 Daum 스타리그 2007에서 김택용을 상대로 초반 빌드와 전략을 꺼낸 이유가 자신이 그 때 당시 경력이 없었던 신인이고 김택용은 이미 개인 리그 우승을 한 상대이었기 때문에 운영으로는 이기기 매우 힘들다는 판단에 승부수를 띄운 것이라 언급했다.
2010년 9월 11일에 최연소 골든마우스를 획득하면서 4번째이자 마지막 골든마우스 주인공이 되었다. 사실 이 최연소 기록은 더욱 단축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바로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1 결승전에서 김정우를 상대로 2:0으로 리드하다가 나머지 3경기를 연속으로 내주면서 역스윕을 허용하는 바람에 첫 번째 골든 마우스 도전기는 실패로 들어갔다.
이영호 본인이 개인 방송에서 언급하길 사실은 이제동과의 msl 결승전 경기가 곧 있어 그것을 의식해 김정우와의 결승전은 따로 준비한 빌드를 안 쓰고 원배럭 더블 운영식의 기본기로 결승에 임했다고 말했다. 어찌보면 이영호에게 당연할 수 밖에 없는 게 그 때 당시 이제동 역시 결승전을 관람하러 왔었기 때문에 나중에 쓸 빌드를 아껴두고 싶다고 했고 이미 예전에 김정우를 상대로 완승을 거둔적이 있었고 김정우 또한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 1에서 불사조처럼 재경기를 수없이 거듭나며 매우 힘들게 올라왔기 때문에 이영호 입장에서는 그를 크게 의식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였고 본인 역시 개인 방송에서 이 부분을 인정했다. 2:0으로 리드하는 상황에서 한 경기만 이기면 골든마우스를 가질 설레임과 이미 결승전 전부터 온게임넷에서 너무 설레발을 쳐놔서 매우 긴장한 나머지 3번째 경기에서 조금씩 말리기 시작하다가 김정우가 계속 초반 찌르기의 빌드를 가져오면서 사실상 장기전 운영을 준비하고 있었던 이영호에게는 날카로운 대처가 힘들었고 결국 큰 무대에 많이 서 본 이영호였지만 너무 들뜬 마음에 멘탈 관리에 실패하면서 그만 준우승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 1 결승 이후 많이 반성하면서 그 다음 시즌인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시즌 2에서 또 다시 당당히 결승에 올라가 세기의 라이벌이었던 이제동을 3-1로 꺾으면서 골든마우스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고 본인 역시 그 이후로 자만심에 빠지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했다고 말했다.
결국 그 기세로 2010년 10월 4일에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의 마지막 WCG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값진 우승을 했고 곧이어 2011년 6월 12일에 마지막 MSL의 주인공이자 최연소 금배지를 획득하면서 최연소 최다 커리어 보유자가 되었다. 이 계기를 통해 이영호의 커리어는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역사상 최고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고 곰TV에서 잠시동안 열렸던 개인 리그 우승 2번과 월등한 다승 그리고 승률 1위 프로리그 성적을 바탕으로 역사상 최고의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프로게이머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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