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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 김택용

by PD 하경 2018. 2. 7.

 프로게이머 김택용은 잘생겼던 외모로 인해 신인 시절부터 주목을 받았으며, 실력과 커리어 또한 뛰어나 많은 팬들의 관심을 받는 인기 프로게이머이다. 양대 개인 리그 7회 연속 본선 진출에 성공하면서 개인 리그 최다 연속 본선 진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김택용의 메이저 데뷔는 2006년이기 때문에 박성준의 기록보다는 포스가 떨어진다. 그러나 김택용은 그가 데뷔한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2, TV MSL 시즌1 이후 본선 진출에 실패한 대회가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 단 한 번 밖에 없었다. 17번의 대회 중 16번을 진출한 것은 분명 엄청난 기록이다. 그러나 진에어 스타리그 2011 오프 라인 예선 4강에서 탈락하면서 기록이 종료되었다.

 

 3.3 혁명으로 마재윤의 본좌 시대를 종결시키면서 모든 스타 팬의 머릿속에 자신의 이름 석자를 각인시킨 이 게이머는 그 이후로도 꾸준히 프로리그와 개인리그에서 활약하였다. 특히나 프로토스의 저그전 극복 역사에서 그의 이름은 뺄 수가 없다. 이 후 시작된 택뱅리쌍의 시대에서도 다른 강자들과 함께 불꽃 튀는 승부를 보이며 스타판을 흥분으로 달구는 정상급 플레이어로서 그 위치를 단단히 지켰다.

 

 스타크래프트2로의 종목 전환 이후, 허나 개인 리그의 성적 저하로 시작된 부진이 전체적인 실력 저하로 나타나면서 김택용은 점점 잊혀져 갔다. 그럼에도 프로리그에서 간간히 승리를 거두면서 분전했지만 결국 201399일에 은퇴를 발표하였다. 김택용의 은퇴 직전 은퇴를 선언했던 허영무와는 달리 기량이 상당히 떨어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은퇴를 납득하는 팬들도 많았으나 그래도 택뱅리쌍의 한 축을 이루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수였기에 은퇴에 대한 파장은 허영무의 은퇴 못지 않았다.

 

 김택용의 플레이 스타일은 데뷔 초기부터 물량과 테프전을 제외한 힘 싸움에 능한 프로토스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김택용' 하면 물량과 힘 싸움보다는 현란하고 화려한 멀티 태스킹으로 대표되는 견제 테크니션이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이는 스타판이 그에게 주목하게 된 계기인 저그전의 비수류와 테란전의 아비터 위주의 속칭 비수류 대테란 버전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3.3 혁명 당시 마재윤 역시 그의 스타일을 박지호, 혹은 박지호의 다운그레이드판으로 보았고 이후 마재윤은 김택용의 미칠 듯한 견제에 휩쓸리며 히드라 댄스를 추게 되었다.

 

 T1의 동료 도재욱과 비교되면서 김택용은 테크닉, 도재욱은 물량으로 구분되는 경향이 있었다. 나아가 누가 누구를 흡수했네 어쩌네 하는 소리까지 있지만, 그러한 이분법은 사실과 다르다. 위에 언급 되었듯이 원래 김택용은 스피릿 박지호의 영향을 받아 순수 물량과 힘 싸움의 귀재였다. 테크니컬한 저그전을 구사한 것도 마재윤과의 MSL 결승전이 처음이었을 정도이다. 따라서 물량과 힘 싸움에 있어서는 부족함이 없으며 포모스의 한 사람이 유격전이라고 표현하는 백병전도 일품이다. (VS 도재욱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7 전기 리그 in 신 백두대간, VS 송병구 곰 TV MSL 시즌 2 in 파이썬)

 

 이 사실은 당시의 경기를 찾아서 보면 알 수 있는데, 귀찮다면 해설자들의 발언만 보더라도 어느 정도 감흥이 있을 것이다.

 

김동준 : "김택용은 멀티 세개 먹어도 미네랄 2, 300 밖에 안 남는 생산의 대가입니다!"

(vs 강민 4강전)


이승원 : "김택용 선수의 가장 큰 장점은 뭐겠습니까, 아무래도 물량 아니겠습니까?" (3.3 혁명 당시)

 

 김택용의 피지컬(손 스피드)은 워낙 명성이 높다. APM이 거의 400에 육박하고, 바투 스타리그 16강전 송병구와의 경기에서는 400을 넘겼다. 그리고 실제 APM이라 볼 수 있는 EAPM240이다. 프로토스 중에 최상위로 손꼽힌다. 타 종족 중에서는 이제동, 이재호가 260정도의 EAPM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물량과 힘 싸움에 더해져서 특유의 화려한 멀티 태스킹과 컨트롤이 꽃을 피웟다. 흔히들 입스타라고 생각하던 커세어 다템을 중심으로 한 저그전 운영으로 우승을 하며 스타팬들에게 그 존재감을 각인 시켰던 그인 만큼 부연설명은 필요하지 않다. 그의 메카닉과 컨트롤의 진수를 보여 준 경기가 WCG 2009 8강전에서 이영호와의 3경기 단장의 능선에서의 경기이다. 당시 드라군 하나에 마인을 각각 찍어주면서 마인을 제거해 대니 한 번도 마인이 제대로 터지지 않아 깔끔하게 막혔다. 무서운 것은 이영호의 벌처 컨트롤도 정말 대단했는데 김택용이 그걸 다 막았다는 것이다.

 

 의외인 점은, 화려한 멀티 태스킹으로 대표되는 저그전과는 다르게 테란전에서 의외로 빈틈을 보이는 경우가 자주 있다. 특히 가장 심해지는 것이 대규모 후반전인데, 잘 나가다가 한순간 정신줄을 놓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경기력을 보여주며 발 전투로 훅 가 버리는 사태가 발생한다. 언덕을 빙 둘러 걸어 오며 탱크에 다 맞아 주시는 친절한 드라군들, 질럿이 몸을 대 줬더니 정작 정찰용으로 띄워진 테란 건물이나 때리고 있는 드라군들, 버뮤다 토스 뺨치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폭소를 터뜨리게 만드는 뜬금없는 리콜 위치 등. 멀티 태스킹 능력이 뛰어남에도 테프전에서 이런 약점을 보이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팬들조차 김택용의 테프전 발 전투는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 외에도 실력에 비해 양대 개인 리그 활약이 부족하다. '프로토스 게이머 최고 커리어인 양대 개인 리그 도합 3회 우승자'에게 무슨 소리냐고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에 진출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다가 2008년 클럽데이 온라인 MSL 우승 이후로 양대 개인 리그 결승에 진출한 적이 없다. '이영호의 양대 개인 리그 6회 우승''이제동의 양대 개인 리그 5회 우승'에 비해 확실히 밀리고, 리쌍은 WCG 브루드 워 부문 우승 경력까지 31번으로 밀린다. 물론 본선 진출은 꾸준히 한 편이라 조 지명식에는 자주 얼굴을 내밀었지만, 김택용이라는 게이머가 16, 8강에서 멈춰야 할 이름 값은 아닌 것 또한 사실이었다. 게다가 2011년 초 양대 개인 리그 백수였던 시기에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에서 3회 연속 올킬에 대 저그전 151패라는 기록을 자랑하였다. 실력이 좋고 프로리그에선 날아다니는데 양대리그는 높이 올라가지 못하니 팬들 입장에선 복장이 터질 노릇이다.

 

 하지만 예전부터 SKT T1이 선택과 집중이라는 미명 하에 팀 단위 리그인 프로리그 훈련에 비해, 개인 리그 훈련을 무시하는 행보를 걸었던 것은 스타 팬이라면 다 아는 일이고, 그러다 보니 김택용의 개인 리그에서의 부진을 단순 멘탈 문제로만 돌릴 수는 없지 않느냐는 얘기가 많았다. 결국 2011422, ABC마트 MSL 32강 탈락 2일 후, 불만이 폭발했는지 소속 팀을 디스하는 인터뷰를 했다.

 

 그러나 이후 곧바로 정명훈이 개인리그 연습 시간이 많다는 말을 했고, 이후 서지수가 한 정명훈과의 인터뷰에서 밝혀진 바로는 '정명훈에게만 연습 시간을 많이 주고 김택용에겐 연습 시간을 안 준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전부 자신의 팬이 아니라 안티 팬으로 간주하겠다고 김택용이 말했다고 한다. 김택용 선수의 성격상 본인의 아쉬운 상황 때문에 같은 팀원이 피해를 입는 것을 좋아하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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